암경험자 9명, 국내 최초의 암 테마 소설집 '인생은 아름다워' 출간
국내 최초의 ‘암 테마 소설집’이 나왔다. 본인이나 가족이 암을 겪은 암경험자 9명이 함께 쓴 ‘인생은 아름다워’(북오션 발행, 268쪽, 17000원)다.
작가 9명의 직업, 나이, 암의 종류와 투병 경험, 몸 상태는 다양하다. 그만큼 소설 주제와 내용도 각양각색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고 메시지도 풍성하다. 소설에는 유방암에 걸린 여고생, 간암에 걸린 외삼촌을 먼저 떠나보낸 조카, 같은 암을 앓는 환우, 엄마가 등장한다.
유방암 경험자인 30대 교사, 폐암 경험자인 70대 극단 감독, 백혈병 말기를 극복한 40대 작가, 유방암을 겪은 50대 베스트셀러 소설가, 대장암 3기를 완치한 뒤 암경험자 삶을 디자인해주고 있는 칼럼니스트,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다가 마흔에 간내담도암 진단을 받은 에세이스트, 당뇨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다는 발명가···.
‘악어의 눈물’을 쓴 홍유진 작가는 생존확률 10%의 백혈병 말기를 극복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브레이크 없이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삶을 살다가” 2013년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고통스럽고 힘겨운 투병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화 소설 ‘웰컴 투 항암월드’, 암을 극복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길고양이를 소재로 한 동물 에세이 ‘길고양이에 꽤 진심입니다’를 썼다.
홍유진 작가는 암경험자의 심리적 경제적 회복과 암 예방을 목적으로 설립된 암경험자 협동조합 캔프의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만성골수백혈병(CML) 환우 모임인 제로클럽 운영진으로 활동하고 있다.
단편소설집 '인생은 아름다워'(북오션 발행)에 '악어의 눈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쓴 홍유진 작가. 백혈병 말기를 극복한 홍 작가는 자신의 투병 경험을 '웰컴 투 항암월드'라는 소설로 펴냈다. 캔프협동조합 이사장을 맡고 있다./캔프협동조합 제공
‘어느 고등학생의 사랑 이야기’를 쓴 김재희 작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유방암 경험자인 김재희 작가의 2006년 ‘훈민정음 암살사건’으로 데뷔한 이후 역사 미스터리에 몰두, 낭만과 욕망의 시대, 경성을 배경으로 시인 이상과 소설가 구보가 탐정으로 활약하는 ‘경성 탐정 이상’을 써 2012년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받았다. 이상 탄생 110주년인 2020년 ‘경성 탐정 이상’ 5권이 완성, 출간되었다. 2023년 장소 기반 힐링 소설 ‘흥미로운 사연을 찾는 무지개 무인 사진관’을 발표했으며 ‘경성부녀자 고민상담소’는 드라마로 제작될 예정이다.
‘엄마의 소울 푸드’를 쓴 홍헌표 작가는 대장암 3기에서 회복하는 과정을 담은 암투병 에세이 ‘나는 암이 고맙다’, ‘암과의 동행 5년’과 암 완치 이후 살아가는 모습을 소재로 한 ‘웃음보따里에서 띄우는 행복편지’를 썼다.
자신의 암 치유 경험과 헬스케어 전문기자로서 얻은 건강 정보를 바탕으로 암 치유 프로그램 기획, 암 경험자 코칭·상담, 암 전문 언론 <캔서앤서> 발행, 일반인 대상의 건강 강의, 생애 설계 코칭 등에 힘을 쏟고 있다. 이를 위해 한국코치협회 전문코치(KPC)가 되었으며 웃음 치유 동호회 ‘웃음보따리’를 12년째 이끌고 있다. 조선일보 기자,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을 지냈으며 한국일보 ‘삶과 문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배우, 연출가, 연극극단 대표로 40년 이상 활약 중인 김동수 작가(가운데)가 캔서앤서 유튜브에 나와 자신의 삶과 폐암 경험을 나누고 있다.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수업’을 쓴 김동수 작가는 소설가보다는 원로 연극인이자 극단 대표로 더 알려져 있다. 1970년 기독교방송 성우로 시작, 1973년 KBS 공채 탤런트 1기로 연기의 길에 들어섰으며, 우여곡절 끝에 연극배우로 53년을 살아온 배우이자 연출가이며, 제작자다. 제26회 동아연극상 남자 연기상을 수상한 후 극단 김동수컴퍼니를 창단해서 수십 편의 연극과 판토마임에 출연했고, 수많은 영화와 TV 드라마에 출연했다. 연출한 작품으로는 ‘우동 한 그릇’, ‘완득이’, ‘오스카와 장미 할머니’,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등이 있다.
그가 2018년 폐암 1기 진단을 받았을 때, 연극계에서는 ‘김동수가 암으로 폐인이 됐다’는 소문이 나돌았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복남이의 풀 한 포기’를 쓴 서연진 작가는 고인이 된 아버지(대장암)와 형제 두 사람이 암을 겪었거나 겪고 있는 가족이다. 풀 한 포기도 밟지 못하는 소중한 시간들, 삶과 죽음 그리고 질병에 대해 관심이 많고 육체적・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고 싶어 암 경험자 협동조합 캔프 창립에 참여했으며 현재 교육이사를 맡고 있다. 치과 위생사로 암경험자와 노약자 맞춤형 치약을 개발해 판매하는 ‘아폴로니아케어’ 대표를 맡고 있다. 그의 소설은 ‘하늘에 계신 언니에게 바치는’ 글이기도 하다.
‘장 여사 아랫배 수난사’를 쓴 황영준 작가는 암 투병 3년 차다. 2021년 마흔 살에 간내담도암 진단을 받고 수술, 항암치료를 마쳤다. 지금은 3개월마다 정기 검진을 받으며 암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블로그에 일기를 쓰고 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건강’을 부르짖는 암 예방 전도사로 자처하고 있다. 에세이 ‘마음이 얹힌 거야’를 썼다.
‘요가 부부’의 강진경 작가는 10년차 교사이자 네 살 딸의 엄마였던 2021년 30대 유방암 환자가 됐다. 강 작가는 글쓰기가 암을 치유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글이 건강 에세이 ‘유방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암 투병 후 아이와의 소중한 기록을 담은 육아 에세이 ‘아이는 말하고, 엄마는 씁니다’, 예민한 아이를 키우며 겪은 경험을 정리한 육아서 ‘예민한 아이는 처음이라’로 탄생했다. 강 작가는 지금도 암 환우 단체에서 독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암 경험자 멘토로 활동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새벽 세 시, 별빛이 내릴까요?’를 쓴 이하나 작가는 아홉 살 때부터 연극배우의 꿈을 꿨다. 꽤 긴 시간동안 다른 일을 하다가 결국 돌고 돌아 이르지 않은 나이에 극단 미추에 입단했다. 가음 배우로, 다양한 장르의 공연 기획자로 무대만을 바라보던 2019년 어느 날, 유방암을 만났다. 이하나 작가는 예전처럼 공연 활동을 활발히 하지는 못하지만 암을 만난 이후 오히려 인생의 지경이 넓어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게 되어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은 배우 이외에도 캔프협동조합 이사, 네트워크 사업가로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 출연작으로 연극 ‘여자 이발사’, ‘고령 수감자’, 무용극 ‘깊은 그리움’, 영화 ‘밀정’ 외 다수가 있다.
‘꼼장어와 쐬주 한잔’은 김인재 작가의 소설 데뷔작이다. 다음은 김인재 작가의 자기 소개다. “평택의 누런 벼가 익어가는 들판을 보며 10대 소년 시절을 보냈고, 안암골에서 밤을 지새며 연구를 하던 물리학도로 20대 청년 시절을 보냈다. 30대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의료용 엑스선 검출기를 완성했으며, 40대는 세상에 이로운 일이 아닌, 자신만을 찾아다닌 어리석은 시절이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되돌아와서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는 50대에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 이 자리에 있는 감동을 받고 있다.” 김인재 작가는 난치성 고혈압을 식습관 개선, 운동 등을 통해 극복했다. 지금도 음식을 통해 병을 예방할 수 있는 믿음을 나누기 위해 약선 공부를 하고 있다.
<작가 후기>
홍유진 : 저도 자살을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갑작스레 혈액암 말기 판정을 받고 “치료가 어려우니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말을 의료진으로부터 들었을 때죠. 제 나이가 31살. 민머리로, 가슴에 항암 치료를 위한 관을 꽂은 채로 죽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나는 이전의 나로 기억되고 싶었어요. 며칠이 될지 모를 하루를 더 살기 위해 고통스러운 삶에 매달리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족도 의료진도 저를 그대로 보낼 마음은 없었어요. 그들이 보기에 저는 죽기엔 너무 젊었습니다. 정신없이 항암 치료가 시작됐고, 그러자 죽음이 가장 쉬운 선택이 되었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공기 중에 떠다니는 약한 세균으로도 잘못될 수 있었으니까요. 죽음이 망나니처럼 칼을 휘두르면 살고 싶어집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삶을 선택했고 최선을 다해 노력했습니다.
김재희 : 유방암 치료 중 병원 진료실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울고 있는 젊은 여성을 보았습니다. 긴 가발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엄마에게 하소연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스물 초반이나 되었을까. 내가 지금 쉰의 나이에도 이렇게 무섭고 아프고 서운한데 그들은 얼마나 힘들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유방암에 걸린 고등학생의 비밀을 지켜주는 친구가 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았습니다. 쓰면서 제 경험이 겹쳐 눈물이 슬쩍 나기도 했습니다. 암에 걸려도 잘 치료하면 여생을 잘 보낼 수 있다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간의 드라마, 영화에서 보이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암 환자가 아닌 암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가는 여자 고등학생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서연진 : 삶의 어느 순간에 다가온 엄마, 언니 그리고 복남이의 이야기. 누구나 삶이 한 편의 드라마라지만 평탄하지 않은 삶을 통해 배웠습니다. 죽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고, 인생은 알 수가 없구나. 돈도 명예도 죽음 앞에서는 부질없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생! 정답이 없기에 바둥거리면서 위를 향해 달려갈 필요 없이, 지금 이 순간 옆에 있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사는 삶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둘째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알았습니다. 준비하지 못한 죽음이 남겨진 사람들을 얼마나 두고두고 살아가기 힘들게 하는지, 그렇기에 살아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김동수 : 나는 배우이자 연출가이며, 제작자로서 배우 생활 53년, 극단 경영 30년 동안 쌓은 경험을 토대로, 나름대로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짧은 글을 난생 처음 써 보았습니다. 비록 졸고이지만 독자님들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작품의 빈 곳을 대신 채워주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황영준 : 암으로 수술을 경험해 보니 몸 구석구석에 스민 사연들이 애틋했다. 몸의 일부를 떠나보내기 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달래주었다. 당사자가 어머니였다면 어땠을까. 그 심정을 상상해 보았다. 철없는 남자들은 어머니의 아랫배가, 어머니의 품이 자신들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는다.
강진경 : 이 이야기는 암 경험자들의 이야기로 액자식 구성을 띠고 있습니다. 외부 이야기는 2년 전 유방암을 진단받은 진영의 이야기이며, 내부 이야기는 25년 전 유방암을 겪고, 지금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재남과 영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암 환자들이 암을 겪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고민합니다. 원래 직장 생활을 하던 분이라면, 계속 직장을 다녀도 될지, 일을 아예 그만두고 치병에 전념해야 할지 고민이 더해집니다. 암 환자의 사회 복귀는 쉽지 않습니다. 심리적으로도 어렵지만, 현실적으로 누군가는 일하고 싶어도 오랜 암 치료로 경력이 단절되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이제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더 많은 젊은 암 환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꿋꿋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이어갔으면 합니다.
이하나 :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저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아침이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은 길고 긴 밤, 홀로 견뎌야 하는 새벽이었습니다. 지나고 보니 아프고 안 아프고를 떠나 사람 누구에게나 새벽녘 잠 못 이루는 외로움과 허전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이 거대한 우주에서 우리가 만난다는 건 우주를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운명 같은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누군가 외로워 보인다면 가끔은 그냥 가서 안아주고 곁에 있어 주세요. 그걸로 충분합니다. 엄마. 홀로 긴 시간 너무나 외로웠을 엄마. 함께 많이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김인재 : 어느 날 갑자기 다가와서 죽음과 마주 서게 만드는 암. 평생 성실히 살아온 가장으로서 그 시간을 소중히 대하는 모습을 고민해보았습니다. 암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삶과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 소중하며 설령 이별을 하는 시간조차도 삶의 과정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려보았습니다. 이 시간에도 암 투병을 하는 가장들이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겨내시기를 소망합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시절, 저를 긴 시간 사랑해주셨던 삼촌과 포장마차에서 쐬주 한잔에 꼼장어를 먹던 때가 그리운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