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도 꺾이지 않는 삶을 누려야지요...캔프가 함께 합니다
캔프라는 이름을 가진 협동조합이 있다. 캔프(can.f)는 ‘캔서 프리(cancer free, 암으로부터의 자유)’, ‘캔서 프렌즈(cancer friends, 암을 통해 만난 친구들)’의 약자다. 존율 10%의 백혈병 말기를 극복한 홍유진 이사장을 비롯해 간암, 폐암, 대장암, 유방암 등 다양한 암을 겪은 30~70대 여덟 명이 10개월 동안 준비한 끝에 지난 6월 설립한 암 경험자와 가족들의 협동조합이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암을 진단받는 사람이 20만명이 넘고, 생존 암경험자가 200만명이 넘는 현실이지만, 국가 지원제도나 사회적 인식 부족으로 인해 암을 겪으면서 경력이 단절되거나 암 이전의 삶 복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현실이다.
캔프협동조합은 이런 처지에 놓인 암경험자와 가족들이 자립의 발판을 마련하고, 치유 커뮤니티의 역할을 제대로 해보자는 발기인들의 뜻이 모여 설립됐다고 한다. 암 경험자의 심리, 치유를 도와주는 자조 모임은 꽤 있지만, 이들의 사회 복귀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모임이나 단체는 드문 편이다.
캔프협동조합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조합원은 70명이 넘었고, 네이버 카페 회원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캔프협동조합 초대 이사장은 홍유진 작가(41)다. 홍 이사장은 백혈병 중에서도 예후가 불량해 생존율이 10%로 알려진 만성 골수성 백혈병 급성기(말기)를 극복하고 10년 째 건강하게 살고 있다. 홍 이사장은 자신의 암 투병을 바탕으로 체험 소설 ‘웰컴 투 항암월드’를 썼고, 9명의 암경험자 및 가족과 함께 쓴 항암 단편소설집 ‘인생은 아름다워’(북오션 발행)도 곧 나올 예정이다.
-캔프협동조합에 대해 자세한 안내를 부탁합니다.
“암 경험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는 게 우리 캔프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조합원들이 건강에 도움을 주는 먹거리 뿐 아니라 자신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을 상품화 해 판매하도록 홍보 마케팅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도울 겁니다. 조합원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죠.
오픈한지 얼마 안됐지만 네이버스마트스토어를 통해 이미 현미쌀 등 현미 제품, 질 좋은 차가버섯 제품, 치약, 샴푸, 입욕제, 아트 제품 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모두 캔프협동조합 조합원 개인 또는 회사의 제품입니다. 조만간 20여개 제품이 판매될 예정이고, 조합원 누구나 심사 기준을 통과하면 캔프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를 할 수 있습니다. 최근 제2회 ‘우리 지구와 함께 한마당’ 축제에 참여해 캔프 조합원이 만든 먹거리를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제품 뿐 아니라 심신 건강 치유 프로그램, 건강 도서, 심리상담·코칭 프로그램도 오픈될 예정입니다. 웃음 치료 워크숍, 제주도 워크숍 같은 조합원을 위한 힐링·치유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내년 초에는 암을 주제로 한 건강엑스포도 개최할 예정입니다.”
-캔프 협동조합에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건가요?
“캔프는 암경험자나 가족이 아니더라도 건강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참여 가능한 협동조합입니다. 네이버카페 ‘캔프협동조합’에 등록된 구글폼을 작성하시면 참가 신청이 완료됩니다. 조합 가입비 10만원이 있습니다만, 협동조합 운영 수익이 생기면 공평한 비율로 수익금을 나눠드리고, 피치 못한 이유로 탈퇴시에는 조합비를 돌려 드리기 때문에 큰 부담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최우선적으로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분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 제도가 마련돼 있으니 관심 있는 분이라면 누구든 문을 두드려주시면 좋겠습니다.”
-투병 중이라서 캔프협동조합 참여가 쉽지 않은 암경험자도 있을텐데요?
“현재 몸 상태나 거주하는 지역 등 다양한 사유로 캔프 활동이 쉽지 않은 암경험자도 계실 겁니다. 그런 분들은 몸과 마음 관리가 최우선이지요. 좋은 음식 잘 드시고, 적절한 운동과 면역 관리가 필요하십니다. 캔프는 오프라인 모임 뿐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도 활동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카페에 가입하셔서 건강 정보를 공유하시고 이심전심으로 경험을 나눌 수 있습니다. 다양한 치유 프로그램이 차례로 시작될 예정인데, 카페나 유튜브, 줌(zoom) 강의 등을 통해 조합 활동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암경험자에게 캔프 활동이 중요한 이유가 뭔가요?
“암을 겪었어도 우리 삶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암에 꺾이지 않는 삶이죠. 그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만나면 마음이 조금 더 쉽게 열리고, 서로 공감과 위로를 주고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단순히 심리적인 지지를 넘어, 사회로 복귀하는 과정에 함께 하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암환자가 아닌 ‘암경험자’로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실 겁니다.”
-협동조합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캔프 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은 ‘신이 보내주셨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분들이 함께 합니다. 제가 이사장을 맡고 있지만 설립에 참여한 임원 한 분 한 분이 대단한 열정과 능력과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제가 한 단체를 이끌기에는 비교적 젊은 나이라서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연령과 성별이 다양한 우리 나머지 임원들이 충분히 채워 주시고 있고요, 캔프의 모토가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인 만큼 조합원 한 사람 한 사람이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캔프협동조합원 9명이 함께 쓴 공동소설집 '인생은 아름다워' 표지. 소설가, 전직 기자, 교사, 연극 감독 등이 암을 모티브로 해서 쓴 단편소설을 모았다.
-암 진단 이후에는 어떻게 사는 게 좋을까요?
“암 진단 전 제 삶은 브레이크가 없는 삶이었습니다. 일할 때나 술 마실 때나 언제든 끝까지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자신을 돌보지 못했죠. 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가보니 저처럼 너무 열심히만 살아온 분이 많았습니다. 암을 겪고 난 후로는 제 삶에도 ‘브레이크’가 생겼습니다. 저는 일을 하다가 조금이라도 몸이 피곤하거나 어지러우면 일을 멈춥니다. 암 이전에는 없었던 제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즐겼기 때문에 모임, 만남을 주저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생긴다면 세 번을 참고 그 다음엔 과감하게 거리를 둡니다. 욕심을 버리고 제 자신을 우선 챙기기 시작한거죠. 제 몸과 마음이 보호받는 기분이 듭니다.”
-지금 이 순간 암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암은 인생의 ‘정지’가 아닌 ‘쉼표’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바쁘게 살면서 내 몸을 돌보지 않고 살았으니, 암을 계기로 강제로 쉬라는 일종의 신호인 것이죠. 암을 이겨내고 나면 오히려 더 날아오를 수 있을 겁니다. 암에 걸렸다고 좌절하거나 자책하지 마세요. 살다 보면, 누구나 시련이 오는데 암도 시련의 하나쯤으로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암 투병에 끝이 없어 보이겠지만, 본인과 가족, 의료진을 믿고 잘 관리해가면 분명히 저처럼 새로운 삶을 찾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응원합니다. 홧팅!”